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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직의 근로자 지위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주요 대선후보들의 특수고용직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정책 답변을 시작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을 정부에 권고한 이후 고용노동부가 이를 수용키로 한 결과이자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많이 남아있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특수고용직은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니고 퇴직금도 없다. 직종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인정받은 노동자'에 비해 처우는 열악할 수밖에 없고, 그 수는 200만~3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특수고용직에는 캐디, 학습지 교사, 화물운전자, 배달원, 헤어디자이너 등 다양하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대부분 역시 그들의 근로자 지위 인정을 바라는 듯하다.

그러나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이는 특수고용직이 있다. 바로 보험설계사인데, 지난 30일 발간된 보험연구원의 <특수형태근로자 보호입법에 대한 보험설계사 인식조사>에 따르면 80%에 가까운 보험설계사가 고용형태로 근로자보다 개인사업자를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의 근로자 인정을 위한 외부의 노력과 관심을 제발로 차버린 셈이다.

정권 교체 이후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최저인금의 인상 등 '노동자로서의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각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 역시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써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 여부를 주장하는 '전국보험모집인노조'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전국보험모집인노조는 사원번호가 있으며 회사에서 지급하는 수당을 받고 있기 때문에 보험회사 직원(근로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험설계사의 사원번호는 보험모집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무 처리와 개인식별을 위한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고유번호에 불과하다.[각주:1] 이어서 주장하는 '회사에서 지급하는 수당' 역시, 근로성이 짙은 다른 노동자 혹은 특수고용직에 비해 도급계약[각주:2]에 의한 개인의 역량에 따른 보상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근로소득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영업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근거라고 본다.

둘째로 전국보험인노조는 실적과 근무기간에 따라 직급이 존재하므로 근로자성을 입증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보험설계사에 직급이란 것이 존재하긴 하지만, 절대 다수의 보험설계사는 FC/FA/FP/LC/RC 등 보험회사별로 보험설계사임을 밝히는 상이한 명칭을 부여받았을 뿐이며 그것으로 근로자성을 주장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물론 보험설계사 간에도 상하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각주:3] 전통적인 근로자 조직에서의 직급과 그에따른 상하관계에 비해 결속력이 부족하고, 업무적 연관성이 낮다. 보험회사의 실적과 근무기간에 따른 직급의 부여는 윗 문단에서 반론한 것처럼 개인의 역량에 따른 보상의 성격(부여된 직급에 따라 수수료지급률, 사무실 제공 등)이 강하고, 이탈을 막고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일종의 장치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 물론 지점장 또는 교육매니저(EM)에 상당하는 직급을 부여받은 사람은 여타 특수고용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근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근로자 직위를 부여하기도 하며, 선택권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확대하여 전체 보험설계사에 대해 근로자 지위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셋째로 벌금 징수 등의 방식으로 출근을 강요받는다며 근로자성을 주장하는데, 적지 않은 보험회사가 지각 지양과 출근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안다. 그런 분위기에 무게감을 더하기 위해 벌금제도를 운영하는 하위 영업조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측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임직원에 대한 근로계약서와는 다르게 위촉계약서 상에는 출근과 관련된 조항을 명시했을리 만무하다. 출근 강조는 보험회사가 보험설계사에게 제공한 편익에 대해 불문률로서 적당한 수준의 의무를 요구하는 보는 것이다. 벌금 제도가 회사 내규로써 시행되는 보험회사는 없을 것이고, 그렇게 걷힌 일부 하위조직의 벌금은, 조직을 운영하는데 쓰이기 보다는 함께 규칙을 지키기로 한 사람들을 위한 커피값이나 간식비 용도로 쓰였을 것이며, 그런 자율적인 규칙은 구성원간의 합의만 있다면 특수고용직 지위를 두고 논란이 거센 보험회사 뿐 아니라 조기축구회 회원간에도 만들어질 수 있다. 또 설령 출근 강요가 있다고 해도, 출근 이후의 특정한 행위로서의 '근로 강요'와 정시 이후의 '퇴근 강요'는 없지 않은가. 여타 특수고용직과 달리 보험설계사에게는 주어진 일이나 정해진 근로시간이 없는 점은 그들에 대한 근로자성을 약화시키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 

입원 또는 출산으로 인한 기본급여 지급 역시 일부 보험회사의 매우 제한된 경우에 한할 것이며,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만 할 것이다. 이 역시 근로기준법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해촉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일 것으로 생각한다. 강요에 의한 '본인(가족)계약'의 체결 역시 근절되어야 할 대표적인 보험업계의 나쁜 관행이지만, 결국 본인(가족)계약으로 적지 않은 몫을 챙기는 이는 보험설계사 본인이며 그것이 근로자성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주장하는 측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험회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16년 업무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생보 설계사의 월평균 소득이 317만 원이라고 한다. 전체 근로자의 평균 월소득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기사에서 보듯, 보험설계사간의 소득격차는 다른 업종과 비교할 때 최고 수준이며, 500만 원을 초과하는 소득구간을 더 나눌 경우 더욱 극심한 격차를 보일 것이다. 현장에서 목격하는 많은 일반 보험설계사들의 소득은, 보고서가 말하는 월평균 소득만큼 그리 넉넉하지 않다. 생명보험회사 전속 보험설계사의 약 50%에 해당하는 200만 원 미만 월평균소득에 해당하는 보험설계사의 의견을, 이 기사는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보험설계사가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고, 근로소득을 받게 된다고 한 들, 100만~200만 원 미만의 소득구간을 가진 보험설계사의 연말정산 결정세액은 너무 작아 어떤 고용형태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데 말이다. 5명 중 4명의 보험설계사가 자영업자를 택했다는 설문조사가, 세후소득을 비교하지 않고 단순히 고용형태를 근로소득자로 변경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했다면, 월평균소득의 고저를 제외하고 낮은 원천징수세율[각주:4]과 높은 경비율 적용으로 근로소득자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인식하는 보험설계사를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높은 평균연령과, 보수적인 조직 문화, 근로자 지위를 얻게 될 경우 얻을 수 있는 처우 개선에 대한 낮은 인식이 다른 특수고용노동자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되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보험설계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해촉 보험설계사에게 잔여수당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 등 불합리한 보험회사의 행태에는 개선의 필요성을 동감하지만, 그것은 나름의 보험설계사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 마련과 관계당국의 지시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시류에 편승하여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을 주장하기보다, 지금은 여타 특수고용직과 다른 특수성을 가진 보험설계사에 대한 세분화된 기준 정립과 분류, 감독 및 보호대책 강구가 필요한 때이다.


  1. 현장에서는 사원번호보다는 '코드'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리운다. [본문으로]
  2. 대개 '위촉'이라 한다. [본문으로]
  3. 지점장(혹은 팀장, 매니저 등)과 그들이 관리하는 보험설계사, 유치자와 피유치자 등 [본문으로]
  4. 원천징수세율은 말 그대로 원천징수세율일 뿐, 경비율을 적용한 소득금액에 대하여는 최저 6%의 종합소득세율을 적용받는다. 다만 그 경비율이 워낙 커서 내는 세금이 거의 없다고 느끼는 보험설계사가 많을 뿐이다. 소득이 많은 보험설계사는 40%대의 한계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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