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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많다. 그러나 좋은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한정된 자원으로 더 좋은 조건의 집을 찾으려 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탓할 만큼 대단히 싸고 대단히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은 아닌데. 냉장고, 세탁기, 주방 등 필수시설이 갖춰진 너댓평 하는 조그마한 원룸의 월세는 보통 40을 넘는다. 조금 괜찮다 싶으면 50을 훌쩍 넘긴다. 보증금과 합쳐 시세대로 보증금으로 환산하며 전셋가로 1억이 넘는 집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1억이나 주고 살 만한 집들은 거의 없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너무 비싸다.

직장생활이 수 년차지만 온전히 자력만으로 집을 구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높은 보증금을 감당코자 한다면 은행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며칠째 부동산 중개앱을 뒤져 보고 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부동산을 들렀다. 그러나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부동산 중개앱에 올라온 사진은 실제보다 아주 많이 넓어 보이게 찍었다는 것을. 재어본 사람은 안다. 거기에 적힌 전용면적은 진정한 의미의 전용면적과 다르다는 것을. 전화해 본 사람은 안다. 드물게 마음에 드는 집들은 대부분 이미 나갔다는 것을.

엄밀히 말하면 나는 '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방'을 구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처지의 수많은 청년들은 한 층에 최소 네 개의 문으로 구분된 20제곱미터 내외의 방에 살 형편 밖에 안 되니까. 나의 연봉으로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계산해 보았다. 쓸 수 있는 모아둔 돈과 합쳤을 때 1억 짜리 보증금의 전셋집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정도로는 어림 없다. 마지노선으로 정한 최소 여섯 평 이상의 깔끔한 방을 그정도 돈으로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미친 척하고 월 70만 원 이상의 쾌적한 오피스텔에 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금보다 매달 30만 원만 덜 저축하면 된다. 그러나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다. 난 그렇게 대범한 사람이 못된다.

서울은 이렇게 넓고, 매물은 그만큼 많다. 하지만 내집은 어디에도 없고, 마음에 드는 집을 빌리기도 어렵다.

하늘의 별따기라 표현했지만 사실 지난 주말 별을 딸 뻔했다. 그 별을 스치고, 밟아 보고, 만져보기까지 했다. 정말 마음에 들고 넓고 깨끗한 신축 원룸을 발견한 것이다. 보증금 3,000만 원에 관리비를 포함한 월세 40. 결코 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서울 시내에서 그정도 주거비용은 절대 비싼 편이 아니다. 게다가 내부를 봤다면 누구라도 수긍했을 것이다. 신축 건물에 첫 입주, 두 명이 나란히 걸어도 남을 넓은 계단, 예닐곱 평이나 되는 넓은 전용면적[각주:1], 주방 바로 옆에 달린 창문과 또다른 창문까지 총 두 개의 창[각주:2], 방 내부에 설치된 환풍기[각주:3], 직방형의 생활공간을 해치지 않는 화장실 구조, 아일랜드 식탁[각주:4]과 책상으로 쓰일 수 있는 옵션으로 제공되는 고급스런 두 개의 탁자[각주:5], 바로 앞 대형마트와 편리한 교통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때 금액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이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방이지만 계약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가 아직 두 달이 남은 계약기간(부동산은 보통 한 달까지 입주시기를 보류해 준다) 때문이었고, 둘째는 그 건물의 남아있는 방 두개가 모두 반지하였고, 계약기간이 2년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부동산을 방문했을 때, 복덕방 아저씨는 그 방을 가장 먼저 보여주려 하셨다. 나는 반지하는 특히나 여름에 살 곳이 못되고, 단 하루라도 마음 놓고 창문을 열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볼 생각조차 없다며 손사레를 쳤었다. 그러나 주인아저씨가 이끌고 데려가 보여준 방의 상태가 현재 살고있는 곳만 못했으므로, "반지하 같지 않은 반지하!"라 외치는 복덕방 아저씨의 거짓말을 속아주는 셈 치고 마지막으로 보러 간 곳이 그 방이었다.

결론적으로 난 실패했다. 스스로 평가해 보건대 2017년에 가장 잘못한 일이다. 마음에 드는 방을 찾는 것이 어려운줄 알았기에, 반지하와 계약기간 2년은 이미 고려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이었다. 복덕방 아저씨에게도 말했듯 내게 남은 결정은 '입주시기를 언제로 하느냐'에 대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안일하게 "하루이틀쯤 고민하다 전화를 드려도 방이 남아 있겠지."라는 생각이 오산이었다. 이틀 후에 결정했다며 전화를 드리자 내가 나간 후 30분 만에 손님이 와서 보고, 내가 그랬듯 칭찬을 아끼지 않은 뒤 방이 모두 나갔다고 했다. 정말이지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여전히 부동산 중개앱을 들락날락 거리며 관심 매물을 골라내고 있다. 그러나 '그 방'만한 집은 보이지 않는다. 죄다 별로고, 그나마 괜찮았던 방 하나는 벌써 나갔다는 답변을 들었다. 모든 비교대상의 기준이 '그 방'이 되어버렸다. 올바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입맛을 버려'버린 것이다. 모두가 2년으로 계약했을 그 건물에 빈 방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둘러라. 내 눈에 좋아 보이는 집은 남의 눈에도 좋다."는 세입자계의 명언은 적중했다. 곧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복덕방 아저씨/아줌마라는 가이드를 따라 '새로운 방 찾기 투어'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에 드는 매물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두 달 월세를 버리는 셈 치더라도 당장 전화기를 들어 복덕방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하겠다고 외치시라.

  1. 화장실과 주방, 빌트인 된 가구 등을 제외하면 원룸에서 활용 가능한 면적은 서너 평에 불과하다. 침대를 놓는다면 더욱 현저히 줄어든다. 한 평(3.3제곱미터)은 꽤 넓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본문으로]
  2. 원룸에서 두 개의 창문이 딸린 집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으로]
  3. 후술하겠지만 반지하방이었기에 설치되었을 확률이 높다. 원룸, 특히 반지하방은 환기가 쉽지 않아 곰팡이가 슬 확률이 매우 높다. [본문으로]
  4. 아일랜드 식탁을 놓을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방이었다. 원룸 자취생으로서 서러운 점은, 내집, 내 방 안에이라도 편하게 식사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5. 비슷한 탁자야 사면 되지만, 나중에 이사할 때를 생각하면 쉽게 가구를 들여 놓을 생각을 하기 어려운 것이 원룸 세입자의 현실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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